hobakking 2019. 8. 27. 13:09

아내의 한()

어느tv프로에 늙수그레한 분들이 출연하여 옛날 자신이 시댁에서 심한 구박을 받았던 이야기며

남편한테 크게 서운하였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썰을 풀어놓는 프로가 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나도 몇 번 들어보았는데,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가슴 한켠에 아직도 용해되지 않은 채

똬리를 틀고 있다가 지금에야 그 이야기를 뱉어냄으로 스스로 그 한을 달래며 한을 위로 받고자하는

주인공과 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옆에 있는 출연진이나 시청자들이 보고 공감하며 자신의 일 인양

희로애락을 표출하는 모습에 꾀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야 아내가 자신도 그 한이 있었다며 들려준 이야기에 나는 아내가 말하는 그 한의 농도가

좀 약한 것도 같고 코미디나 해프닝 정도밖에 안 될 거라 생각했지만,

아내가 몇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생생하게 발설하는 그 표정에 정말 그랬겠다고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말은 이랬다.

때는 4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애를 임신했을 때 우리가 살던 동네에 큰 잔치가 벌어졌었다.

우리 동네는 우리와 같은 성 인 김 씨와 또 백씨가 거의 반반정도로 집성(集姓)을 이루고 있었다.

그날 그 백씨네 조상 중 한분이 조선시대 장군 벼슬을 하여 그 뜻을 후손들이 기리고 기념하는

신도비제막을 하던 날 이었다.

동네라고 해야 약30호 밖에 안 되지만, 동네 분들과 백씨네 외부 문중 인사들이 많이 모여 조용하던 동네에

모처럼 크게 왁자직걸거리는 행사가 이어졌다.

예나지금이나 사람이 모이면 음식이 안 따를 수 없다.

그날도 떡이며 고깃국에 많은 사람들이 포식을 했을 것이다.

우리 집과 그 신도비 제막식 장소와는 거리로 약300m 떨어졌지만 바로 건너다보이는 거의 지척이라

할 만한 거리이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푸짐한 음식을 대접받고 우리 모친께서도 가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내는 새댁의 몸으로 거기에 갈 용기는 없었고 혹시 문 밖에서 서성이면 누구라도 자신을 보고

새댁도 이리오라고 부르면 마지못한 듯 가서 얻어먹으려고 계속 그곳만 주시 했단다.

그쪽에서 부터 바람결에 풍겨오는 고깃국 냄새가 어찌나 먹고 싶던지 염치 불구하고 달려가고픈 마음도

일더란다.

그러나 끝내 기다렸고 혹시 어머니가 며느리 준다고 얻어 오시지 않을 까 하는 기대로 참고 또 참았단다.

나중에 어머니가 맨 손으로 트림만 하시며 들어오시는 데야 그만 아내는 부엌으로 달려가서 슬프게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자신도 얻어먹는 처지인데 집에 며느리 준다고 달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또 마음이 있다 치더라도 요즘처럼 일회용 용기도 전혀 없던 시절임도 감안해야한다.

암튼 그때 얼마나 그 국이 먹고 싶었으면 지금까지 한이 남았을 까 생각하면 좀 짠하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그때 그 국을 생각하며 수많은 국을 먹어봐도 그 냄새에 못 미친다고 털어 놓는다.

그러나 그때의 시골 국이 돼지 뼈를 고아 선지 넣고 끓인 돼지 국밥수준일 텐데 아마도 임신했을 때라

그 국이 간절했던가 보았다.

작은 한() 일지라도 이제라도 털어 놓으니 아내도 한이 좀 가셔졌을 줄 안다.

뭘 사줘야 그 한이 아주 풀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