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bakking 2019. 4. 14. 19:49

 

그의 뒷모습

차에서 내려 뚜벅 뚜벅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멀거니 바라본다.

고 집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80년대 초일 것이다.

교회에서 남전도회 일을 같이 하다가 알았다.

나이도 같고 고향도 같은 충청도라 서로 의지하고 친한 편이었다.

같이 재무도 오래보았고 교회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한 그였다.

내가 교회를 나갔다 돌아왔을 때 그는 제일 반갑게 맞아주었고 첫날부터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기를 4년 지난 지금까지 그랬다.

교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는 항상 내 옆자리를 고집했다.

지난주일 남전도회를 마치고 말미에 일어서서 다음주일부터는 이살 가서 본 교회 출석을 못한다고 했을 때

나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분위기가 싸늘했다 .

나는 고 집사한테 저녁이나 같이하자고 해서 이 광열 집사와 서오릉 갈빗집을 갔다.

우리 셋은 그야말로 30년 지기 어제의 용사들이다 쑥스럽지만 고 집사를 위해 축복 기도를해주고

오랜만에 식사를 맛있게 했다.

나는 속이 좀 상했다 한 교회에서 30여년을 봉사하고 안수집사가 되었으면 장로를 세웠어야 맞다

그랬으면 섣부르게 이사를간다고도 안 했을 것이다

그분이 은행원으로서 교회재정을 수십 년 간이나 맡아 했으면 큰 공로이다

그러나 후계자를 세우지 않고 회계를 내놓는 과정에 불만이 좀 있었고,

나 없는 동안 내 대신 차량을 운행했는데 약간의 수고비를 받았대서 교회에서 인심을 잃은 것 같다.

그래도 공과(功過)를 따지면 과보다는 공이 월등히 많은 그를 교회에서는 다른 곳 에서 온 분은

장로를 시켰어도 그분은 발라 내어놓았다.

그래서 나는 속이 상한 것이다.

내가 계속 본 교회를 지켰더라면 이런 일들이 안 일어났을 텐데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오늘 그가 떠난 첫 번째 주일, 내 옆자리는 허전했고 식사시간의 내 옆자리는 덩그마니 비어있다.

내 마음도 덩달아 쓸쓸하다 30년 지기인데, 어디가든 건강하게 신앙생활 잘했으면 좋겠다.

자꾸 지난주일 그가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