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언저리
임산부 배려 석
언젠가 지하철을 탔는데, 핑크색 카펫에 끌려 “왜 이곳만 멋있게 꾸몄지?” 하는 생각을 하며 무심코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바닥에 쓰여 있는 문구를 읽어보니 미래의 주인공 이 될 아이를 임신한 임산부 석이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비켜 앉았다.
그때가 아마 지난 해 쯤으로 기억한다.
객석이 길게 7인석의자 5개가 놓여있는 맨 중앙에 7인석 의 양쪽가로 두 석 그 맞은쪽에 두석 도합 네 석이
임산부 배려석이다.
나는 그 후로도 이 임산부 배려 석에는 아무리 비어 있더라고 앉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도 그 의자에 버젓이 앉아서 가는 사람을 많이 본다.
젊은 여자 같으면 초기 임산부 인가보다 그렇게 이해하겠지만 나이 든 여자 심지어는 남자들 노인들까지
그 자리에 앉아간다.
나는 그 사람들이 글씨를 못 읽는 외국 사람인가 도 생각했지만 말 하는 것을 보면 한국사람 맞다.
왜 그럴까? 임시로 앉아 있다가 임산부가 오면 비켜줄 요량인가?
그래도 그렇지 임산부가 자기 자리인 냥 그쪽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고 갔더라도 안 비켜주면 또 어쩔 것인가?
지하철공사에서는 임산부 배려 석을 만든 배경과 임산부에 배려해 줄 것을 여러 차례 안내방송을 하지만
안 들리는 것인지 못 들은 것인지 그냥 앉아있다.
그것을 보는 나는 은근히 화가 치민다.
당장 바닥에 쓰여 있는 문구를 가리켜 안 보이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을 달래느라 애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이왕 배려하려면 확실하게 임신하지 않은 사람은 그 자리에 앉지 말도록 노골적으로 써놓고
안내방송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임산부가 언제나 앉을 수 있도록 비워놓읍시다”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배려라는 뜻을 못 알아들으니 손에 쥐어 주자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청년들은 정말 자리를 비워놓고 안 앉는 사람이 많이 있다.
모두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