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서당에 다닐 때 사부님한테 들었던 이야기다.
어느 마을에 돌쇠라는 청년이 있었다, 돌쇠는 어렸을 때 조실부모 했다.
그러다 보니 일자무식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부모님 제사 때는 축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들었던지 동네 유식한 이를 찾아가서
축문을 부탁해서 더듬더듬 읽고는 하였다.
축문이란 게 유세차로 시작해서 초하루 와 제삿날 일진을 쓰고, 세서천역 현고 후일부임
추원감시 호천망극 근위청작 서수공신 전헌상향하면서 끝난다.
여간 유식해 가지고는 뜻을 해석하기가 난해하다.
그런데 곤란한일이 발생했다. 늘 축문을 써주던 어른께서 출타를 해서 집에 없다.
할 수 없이 돌쇠는 건너동네 훈장을 찾아가서 축문을 부탁했다.
돌쇠네 처지를 다 아는 훈장은 축을 쉽게 써줬는데,
“아버지 오늘 제삿날입니다. 차린 것은 없지만 성의껏 차렸으니 많이 잡수고 편히 놀다가세요.”
이렇게 간단하게 써주었고 돌쇠는 가서 읽었다.
다음날 아침 훈장 댁 문을 두드리는 돌쇠를 보고 훈장은 내심 움칠하였다.
그러나 돌쇠는 보자기를 풀어 음식을 훈장께 드리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이야긴즉슨 돌쇠가 간밤에 아버지 제사를 마치고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돌쇠야 그동안은 음식을 먹으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몰라서 그냥 있다만 갔는데,
이번에는 잘 알아듣고 많이 먹었다”
하더란다. 그래서 축문 써준 훈장께 인사를 온 것이 라고.
이것은 누가 지어낸 것임을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제사지낼 때 축문은 우리가 하는 기도와 같은 맥락이라 생각된다.
기도는 믿는 자의 호흡이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알고 있다.
기도를 할 때 주무시는 하나님을 깨우듯이 큰소리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보았고,
산기도 할 때 소나무를 세 네 그루쯤 뽑아야 기도한 보람도 느끼고 이력에 남는다고 자랑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조용조용 마음속으로 수시로 대화하듯 하는 기도도 기도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런 기도를 한다.
운전을 하면서 , 길을 걸으면서 “아버지 참 곤란하네요, 이런 땐 어쩌면 좋아요? 도와주시면 안 돼요?”
이런다. 그래도 들으시고 해결해 주실 것은 다 해결해 주시는 것을 체험했다.
앞서 예화를 들었던 그 귀신은 무식해서 그랬다 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까지 모두 아시는 분이니 굳이 우리가 어려운 용어를 쓰던
유식한 말을 쓰던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내용을 책잡거나 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시간도 짧게 하는 분 길게 하는 분 다양하다.
나는 배운 것이 짧고 믿음이 약해서 길게 하려도 밑천이 달려 못하고 있지만
우리 장로님들은 수려한 문장에 은혜로운 말씀을 너무 잘 구사 하셔서 내가 주눅들 때가 여러 번 있다.
그러나 대표기도라는 것은 온 교인을 대표해서 하는 것 인만큼 내용도 내용이지만 시간안배도 중요하다.
꼭 법에 정해진 것은 아닐지라도 보통 3분이라는 것은 상식으로 통용된다.
예배시간이 보통 1시간이니 기도를 오래하면 깎아먹는 것은 결국 설교시간이다.
두레교회 김 진홍 목사님은 설교하다 첫째 대지 둘째대지 나가다 시간이 되면
나머지는 다음주일에 하며, 끝마치는 것을 보았다.
우리교회 은퇴하신 장로님에게 들은 이야기.
남전도회 연합회 순회 헌신예배를 모 교회에서 드렸는데 기도 담당 장로님이 은혜가 충만했던지
20분을 하셨단다.
예배를 마치고 본 교회 목사님이 크게 화를 내시면서 자기네 장로님들을 향해 저 기도한 장로님
우리교회 다시는 못 오게 하라고 하시더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가 성향이 다르고 스케일이 다르고 패턴이 다르다.
식성도 다르고 식사량도 다르다.
고기를 200gm 먹고도 배불러 하는 사람 한 근을 먹고도 젓가락을 안 놓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존재 한다.
기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3분으로는 왠지 모자라고 한 것 같지가 않아 오래 해야 마음이 놓이는 그런 분도 있을법하다.
그러나 기도를 오래 한다고 잘하는 기도요 은혜가 충만한 기도인가 물을 때는 얼른 대답을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