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부라보--60
일환은 시골 내려가기가 왠지, 즐거움이 없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도 뭔가 허전함은 가시지 않는다.
허전하시죠?
든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잖아, 정애 하나 없으니 빈집 같아.
그나마, 김 선생이오니 한결 났네, 정애는 잘 하고 있지?
전화 안 해요?
갈 때는 자주 한다 해놓고 지금까지 한 통화 했어, 너무 잘 해주시니, 여기는 잊었나봐.
그럴 리가요, 나름 바빴겠죠,
정애가 없는 학교는 역시 허전하다. 처음 내려 왔을 때의 그 긴장감도 열의도 점점 식어가는 것 같다.
또 일환에게 관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미술 선생을 하는 박 선생이란 분이 있다,
그 박 선생이 일환에게 계속 찝쩍대고 있었다, 어느 날 일환은 박 선생에게 나는 여자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고 말한 게.
김 일환선생은 게이다, 호모다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일환은 그렇잖아도 마음이 떠난 상태인데, 그런 헛소문 까지 도니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래서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야겠다고 일환은 마음먹었다.
일환은 이 문제를 교감선생님과 상의했다,
나도 그 소문 들었네, 그 소문 때문에 그렇다면 그냥 있어, 나와 교장선생님이 증인인데,
소문은 곧 가라앉아,
아닙니다, 마음먹은 김에, 옮겼으면 합니다,
정 그러면 내가 알아봐 줄게.
다음날 교감선생님은 , 정상 적으로는 안 된다고 하신다. 큰 결격사유가 없으면, 3~4년을 근무해야 하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김 선생 빽 있으니까 전화 해봐, 하시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말 나온 김에, 일환은 김 교육감님한테 전화를 했다,
교육감님께서는 원하는 학교가 있냐고 물으셔서 T읍에 있는 남고를 희망한다 말했고, 3월에 발령을 내주시겠다고 말씀 하셨다.
가을이 무르익었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서울 집에 간 일환에게, 송 여사가 뜬금없이, 정애네 배추 잘 되었냐 묻는다.
잘 되었지 배추 한포기가 거짓말조금 보태서 절구통만하다고 말했다.
왜 그런데, 엄마?
정애 엄마가, 시골에 와서 김장해가라고 해서 처음엔 그냥 인사인줄 알았는데, 몇 번을 그러시는 거야, 배추와, 고추가 풍작이라고,
맞아, 고추가 엄청 많아, 하면 언제 오는데?
다음 주 쯤?
엄마도 와?
나야 뭐하러가, 아줌마 둘 하고 김 기사가 트럭가지고 가야할거야.
오늘도 일환은 정애 방에 가서 정애를 포옹하고, 정애를 무릎 위에 앉히고,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한다,
정애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 린지 모른다, 빨리 토요일이 와서, 선생님 품에 안겨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눠야지,
일주일을 이 순간을 위해 사는 것 같다.
그때, 정애 전화기의 벨이 울린다. 누구야 이중요한순간에, 정애가 두런거리며, 전화를 받는다,
오빠? 응, 그래 알았어,
무슨 전화가 그리 간단해?
오빤데요, 오빠가 버스 정류장에 잠깐 나올 수 있냐고,
왜 집으로 오래지 그랬어,
선생님한테는 창피한 말이지만, 오빠가 용돈이 없다고, 좀 빌려 줄 수 없냐고요,
뭐가 창피해, 내일이기도 한데, 혹 정수오빠 여자 친구 있지?
눈치가 그런 것 같아요,
그러면 용돈이 항시 모자라지,
선생님 같이 갈래요?
어디서 만나는데,
요 앞 버스 정류장,
알았어, 같이 가,
둘이 손을 잡고 버스 정류장까지 갔다,
정수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여기까지 와서 좀 들어오지 않고, 동생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안아?
미안해요, 오늘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다음에, 꼭 올게요.
정애가 정수 손에 살짝 돈을 쥐어주고, 정수가 고만 가본다 인사하는데,
일환이 잠깐 하면서 지갑에서 2십만 원을 더, 준다,
정수는 일환한테 “감사 합니다”, 라고 했다.
가족끼리는 그런 허드레 인사는 안 하는 거야 그냥 씽긋 웃으면 돼.
언제 올 거야, 우리 집.
다음 주에 갈게요,
그래, 정애야 오빠 전화번호 알지?
오빠 전화 없는데,
그래. 그럼 하나 해주자, 가만있자 지금 토요일인데 아직 가게 문 열었을까?
정애야 오빠랑 홍제역 쪽에 한번 가보자.
셋이서 택시를 타고 유진상가 쪽으로 갔다, 아직 문을 안 닫은 핸드폰 가게가 있었다,
일환은 자기 이름으로 핸드폰을 하나사서 정수에게 주고, 개통은 월요일 날 하기로 했다.
연애를 하려면 핸드폰은 있어야지,
정수는 일환을 보고 씩 웃었다.
서로 헤어져 돌아가는데,
정수는 정애가 일환의 팔짱을 끼고 웃으며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예쁜 정애를 우리 집에 보내주신 신께 감사를 드렸다,
“참, 그림 좋다” 정수도 바삐 갈 길을 재촉했다.
정애야 오빠한테, 용돈 좀 챙겨줘,
제가 돈이 어디 있어요?
카드에서 빼면 되지.
어떻게 어머니카드에서 빼서 오빨 줘요. 전 그렇게 못해요,
그럼 내가 줄 테니까, 매달 한 2십만 원쯤 주도록 해,
선생님, 우리 집 , 또 오빠들까지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이런 말 할 때면 의젓한데, 또 어쩐 때 보면 철딱서니가 없고, 이 아가씨가 종잡을 수 없단 말이야, 하하하!
웬 그릇이 이렇게 많아요?
몰랐어? 모레 김 선생 본가에서 김장하러 오시잖아,
벌서 모레예요?
내일 배추 뽑아서 절여 놓아야해,
품을 사서 하세요, 괜히 몸상하세요.
알았어, 그렇잖아도 두 명 샀어,
제가 도와 드릴일 없을까요?
없어, 배추 꼬리나 깎아주면 그거나 먹고 있어,
배추 꼬리도 먹어요?
참, 나 좀 봐, 부잣집 도령이라 그런 것 안 먹어 봤겠군.
내일 반드시 먹어봐야 갰군요. 정애도 잘 먹어요?
잘은 안 먹고 그냥 먹어, 어떤 것은 맵고 어떤 것은 달고 하거든,
다 다음날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다, 일환은 담임을 안 하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보다 좀 일찍 퇴근한다.
밭 옆에 비닐하우스에서 시끌시끌하다, 일환은 옷을 갈아입고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마나. 도련님, 오시네, 도련님 지금 퇴근하세요?
예. 아주머니들 수고하시네요, 여기서 뵈니 더 반가워요.
김 기사님도 “도련님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몇 포기나 하세요?
200포기쯤 해요,
그렇게나 많이요?
식구가 불었으니 더 해야지요,
식구라니요,
정애 아가씨 있잖아요,
모두들 웃는다.
그런데, 정애네 동네에서 품삯을 받고 일 도와주러 온 아줌마 두 명은 왜 정애네 하숙하는 선생보고 도련님이라 굽실거리는지,
정애네 와의 관계는 어찌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김장하는 날은 돼지고기 삶는다면서요, 가서 사올까요?
아이고, 도련님 벌써 사가지고 와서 삶는 중이에요. 그보다도 도련님, 배추 속 한번 잡숴보세요,
하면서 양념 묻힌 배추 속에 굴을 싸서 준다, 일환은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맛있네요,
그런데 우리가 200포기나 먹나요?
도련님은 모르시지만, 해마다 그 정도는 해요,
댁에서도 잡수고, 김 기사님도 드리고, 저희도 주시고, 또 김장 못하는 노인 몇 분께 나눠드려요,
올해는 포기가 좋아서, 양이 엄청 많아요,
두 분 아주머니가 주도 적으로 하고, 동네 아주머니 둘과 정애 어머니는 보조 일을 하고 있었다.
여기 사모님 말씀이 서울 우리 김장스타일로 여기 김장도 하시라 하셨어요,
김장도 스타일이 있어요?
그럼요, 지방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틀려요,
그래요?
안에 넣는 부속이 조금씩 차이가 나서 다른 거예요. 전라도 에서는 생 갈치, 동태, 그런 것 들어가고 또 어떤 곳에서는
쇠고기 살 같은 것도 들어가거든요.
도련님은 생선 안 드시니까 그런 것 안 드시잖아요,
돼지고기가 익었다고 정애 어머니가 안에서 내오셨다, 모두는 둘러 앉아 김이 나는 돼지고기를 배추 속에 싸서먹었다.
정애 엄마가 옆에서 , “많이 먹어” 올해는 나도 김장 편하게 하네 하며 웃는다,
김장을 끝내고, 김치를 회사에서 가져온 탑 차에 실고, 아주머니들은 따로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조용한 방에 정애엄마와 둘이 앉아있다, 오늘 고생 하셨어요. 어머니,
고생은, 김장 쉽게 했다니까,
늘 하시던 것보다 맛이 없으면 어떡해요?
그럴 리가, 하는 것 보니 우리하고는 견주지 못하게 별것 다 넣던데, 정말 맛있는 김치 먹게 생겼구먼,
어머니 저 내년3월에 T읍으로 갈 것 같아요,
어머, 어째, 왜 그러는데?
제가 자원했어요,
지금 가뜩이나 빈집 같은데, 김 선생까지 없으면 어떻게 해?
저 여기서 다닐 거예요, 어머니 더, 귀찮게 할 거거든요,
잘되었네, 멀어서 힘들잖아?
30분정도 걸려요, 어머니가 힘드시겠어요,
뭐가 힘들어 잘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