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글이라고/문학의 언저리(수필)

교회가(敎會歌)

hobakking 2019. 8. 5. 19:26


 

(연광 교회가)

학교에는 거의 교가(校歌)가 있다 명문 학교에는 거기에 걸맞게 유명 시인이 노랫말을 만들고

유명 작곡가가 곡을 붙인다. 그렇지 못한 일반 학교에서는 국어선생님이 작사하고 음악선생님이

작곡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교회에 교회가(敎會歌)가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연광교회에는 교회가가 있다.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우리교회가 창립 30주년 즈음에 담임하시던 조 윤모 목사님께서 교회 가를 만드시겠다며

전교인대상으로 교회가 가사응모를 부탁하셨다.

이윽고 마감일에 단두건만 응모가 되었고 조 목사님 부인 이신 장 정숙 사모님과 김 집사 라는 분 둘뿐이었다,

이 가사를 가지고 당시 성가대를 지휘 하시던 나 도봉 집사님께서 두개의 가사에 각각 곡을 붙이셨다.

나 도봉 집사님은 본 교회 안수 집사님이셨고 연대음대 작곡과를 나오신 후 명지대 실용음악과 교수를

역임했고 수많은 교회의  성가대를 지휘하셨으며 다수의 성가곡도 발표하셨다,

그뿐 아니라 엘로힘 이라는 음대생 중심의 합창단을 운영하시고 명동에서 입시생위주의

피아노 학원을 크게 하시던 분이시다.

어느 날 오후 예배 광고 시간에 이미 작곡이 완성된 두개의 연광교회가 후보 중 하나를

채택하는 시간이 왔다. 조 목사님께서,

 1번은 장 정숙작사 나 도봉 작곡인 후보 곡입니다.”

하시면서 노래를 부르셨다,

다음 2번은 김 집사님 작사 나 도봉 작곡인 후보 곡입니다.”

역시 조 목사님께서 노래를 부르셨다.

이 노래 중 1번이 좋다 생각하시는 분 박수 주세요,”

짝짝짝 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음 2번이 좋다 생각하시는 분 박수 주세요,”

조용 ~~ 침묵~~썰렁~~

이렇게 100:0 의 스코어로 1, 장 정숙 작사 나 도봉 작곡 연광교회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 후 연광 교회 가를 오후예배 말미에도 불렀고 무슨 행사 때마다 불러서 귀에 익게 되었다.

지금 나 도봉 집사님이 고인이 되신 지도 16년이나 되었다.(20031023일 소천)

그러나 지금도 집사님의 영광 교회 가는 우리 입을 통해 아직껏 불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어느 분을 통해 뜻밖의 말을 듣고 나는 아연실색(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 말씀으로는 연광 교회가가 작곡법에 맞지 않게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말을 못 들어 알 수는 없었고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내 지적 상식으로

이해불가이기 때문에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후에는 애초 안 들었던 것만 못하게 왠지 껄쩍찌근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좀 하자가 있으면 대순가 부르기 좋고 듣기 좋으면 되었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옛 부터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래 민요나 전래 동요가 작곡법에 딱 맞게

지어졌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한사람 그걸 탓하지는 안하니까

이것 또한 그렇게 생각하면 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 하니 마음이 좀 편하다.

오늘따라 옛날 친구 나 도봉 집사님이 몹시 그립다,
언제까지나 아브라함 품 언저리에서 잘 머물고 계시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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