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수
우리 형수 백 상복여사 !
스물한 살 먹던 해 동갑인 우리 형님한테 시집을 오셨다 .
그때 내 나이는 여덟 살 초등학교 2학년 이었다 .
처음 시집 오셨을 때 요를 깔고 앉아 새 댁 노릇을 하는데, 나는 형수가 어찌 생겼나 궁금하여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갔다 . 형수는 내가 시동생인줄 아셨는가 보다 내손을 가만히 잡더니 “도련님 이리 와 봐요”했었다 나는 부끄러워 손을 빼고 도망치듯 그 방을 나왔다 . 그때 형수 모습은 참 예쁘고 고왔다 .
우리 어머니가 원문이 형수 댁에서 처음 선을 보는데 처녀가 어찌나 예쁜지 삼 십리 길을 걸어 집에 오면서 오고 가는 여자를 다 보아도 선본 처자보다 더 나은 처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생전에 말씀 하셨다.
시집온 사흘 후부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 가족인 우리 집에서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고 묵묵히 감당 하셨다 .
지병으로 고생하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인색 하시고 구두쇠 셨던 시 아버지를 떠받들며, 어린 시동생에 시누이가 둘이나 있고, 부리는 머슴이 두 명에 간간히 놉을 얻는 일꾼까지 여러 명의 식사며 뒤치다꺼리를 하셨다.
그렇다고 남편이 도와주기를 했나 오히려 철없는 고등학생 이었으니 말해 무어하랴 …….
그런 와중에 서도 형님이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였다는 말을 듣고 좋으셨던지 학교 갔다 오는 나를 업고 “형이 대학에 붙었대요. 도련님 도 좋지요?”물으니 내 입에서“좋긴 뭐가 좋아 돈 많이 들 텐데” 하였다고, 나는 기억에없지만 형수가 나중에 들려주었었다.
남편 없는 집에서 외롭게 혼자 지내기를 얼마 이었던가. 대학4년에 군대 1년 6개월에 그리고 교육이다 강습이다 수많은 세월을 독수공방 속에 시집살이를 감당 하셨다 .
그런 가운데에도 늘 병환 속에 지내어 항상 입맛 없으시다 던 시어머니의 비위를 잘 맞추셨고 시 아버지 한데도 사랑받고 인정받는 며느리 섰다 .
내가 열 대 여섯 살 먹었을 때 이었던가, 형님이 잠간 외도를 하여 형님이 형수와 다투는 것 을 보았었다 . 그러나 두 분이 위기 를 잘 극복하여 그 후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
형수가 우리 살림을 맡아 하신지 10년인가 11년쯤 될 때에 드디어 첫 발령지인 서산에서 잠시 신혼 재미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또 집에 돌아와서 2~3년을 계시다 형수의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 졌음인지 마침내 온 식구가 대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
우리 집에 오셔서 13년 동안 고생이란 고생 다 하셨고 , 많은 대 소사를 치러냈고 육 남매를 잘 낳아 기르다 드디어 대전으로 독립해 가신 것이다 .
그때가 고생 끝 행복 시작 , 그로부터 형수얼굴에서 행복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형수의 생애 중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 대전 생활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
맏며느리 노릇 하기가 어렵다지만 우리 형수한테는 쉽게만 보였다 .
넉넉한 마음과 큰 이해심으로 시동생 시누이들한테 언성한번 높이지 않고 철모르는 아랫동서한테도 얼굴 한번 붉히지 않으셨다 내가 어렸을 때 어린 조카들한테 심하게 닦달하고 때리기 까지 하였을 때에도 속으로야 속상했을 테지만 겉으로 내색 한번 안하셨다 .
어머니가 계셨지만 있으나 마나셨고 온 살림을 혼자 감당 하셨다 나 학교 다닐 때도 새벽밥 해주시고 도시락 싸 주시고 누룽지 긁어주시던 형수셨다 .그렇게 했던 당시의 심정을 상대가 알아만 줘도 좋으신가 보다 . 몇 년 전, 어떤 기회에 나 학교 다닐 때 새벽밥 해주었던 형수 은혜 고맙고 잊지 않았다고 몇자 적어 보냈더니 그걸 읽고 눈물이 다 나셨다고 하였었다.
대전 살림을 청산하고 시골로 귀향 하셨을 때 , 나도 고향을 다시 찿은것 같았다 그동안 고향 가기가 싫었고 갔다가도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대궐 같은 집을 짓고 겉으로는 아무 걱정 없는 듯 보였지만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더라고 아이들이 속을 썩이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형님한테 말하면 좀 후련 이라도 하실 텐데 형님 성격이 남 같잖아 혼자 애를 태우며 삭히시는 형수님이 딱해 보였다
형님은 우리가 옆에 있어도 형수에게 거북하게 하셨다 역성이라도 들면 오히려 형수가 미안할까봐 참 난감 하였다 .
우리가 가끔 시골 갈 때면 더 싸 줄 것이 없나 안달하시던 형수셨다 많지도 않은 형제 단 둘뿐인 형과 형수여서 난 정말 형님과 형수에게 정말 잘하고 싶었다. 여건이 허락하면 잘 해야지 잘해야지 몇 번을 다짐 했었다 . 올봄 두 분 칠순에 다녀왔고 , 지난 5월5일 아버지 제사에 앞서 다녀왔었다 .
그런데 ,지난 5월 30일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었나?
재현이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작은 아버지 우리어머니가 돌아 가셨어요. 하며 울기에 정신이 멍해졌다 . 혹 잘못 들었나 하고 , 너 누구냐 물었더니 재현이란다.
그때 난 운전 중이었는데 사태파악이 전혀 안되었다 .내가 꿈을 꾸나 ? 왜 멀쩡하던 아주머이 (나는 형수를 시집올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머이라 부른다) 가 돌아가셔, 나는 시골 아주머이가 돌아가셨다고 갈 준비 하라고 집에 전화하였더니 조금 있다 집사람한테 전화와선 산쟁이 형수 돌아가셔도 재율 이(아들) 같이 가냐고 되묻는다. 산쟁이가 아니라 우리형수여 바보야! 하고 소리 지르니 그때서야 마누라도 어떡하면 좋으냐고 허둥댄다.
집에 와서 갈 준비를 하는데 눈물이 자꾸 나온다. 어머니 돌아 가셨을 때도 한 방울도 안 나던 눈물인데, 돌아가신 아주머이도 불쌍하고 형님 생각하니 더욱 눈물이 나왔다 . 시골 가는 차 안에서도 계속 울었다 .
이럴게 허망 할 수가 나는 아주머이가 92세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보다 아니, 친정어머니만큼은 사시리라 굳게 믿었었다. 형님은 몰라도 , 그 말은 집에서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런데 겨우 일흔 살 채우고 가시다니 …….
얼마나 마음을 끓였으면 심장이 멎었을까 ? 아들딸들은 돌아가며 속 썩이고 남편은 몰라라하고 그걸 어디에다 풀어야 할 곳은 없고 혼자 삭이다 삭이다 심장이 멎었는가보다 남들은 그런 아주머이 심정과 내용을 전혀 모른다. 철저하게 혼자만 끙끙 앓을망정 겉으론 명랑하고 쾌활하였으며 전혀 구김이 없으셨다 .
성격이 얼마나 외향적이고, 친교 적이며, 리더십 또한 있으셨던가. 머리도 천재에 가까우시다, 신명도 단연 으뜸이시다 .
반찬 솜씨며 , 살림솜씨가 견줄 자 가 없다 . 이번에 우리처가 냉장고를 열어 보더니 정리정돈 잘된것에 혀를 내둘렀었다 . 그 큰집에 먼지하나 없이 반들거린다.
이번에 아주머이 친구 분들이 많이 오셔서 애통해하며 하는 말이 ‘아까운분 가셨다며 입입에서 칭송을 하는 말을 듣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 .
이제 그 누가 우리를 달려 나와 반겨주실까 ,
이것도 가져가라 저것도 가져가라 끄랭이 끄랭이 싸 주시던 그 모습을 어디서 찾을까
잘 가라고 하시며, 이것은 가다 먹으라고 따로 싸주시던 그 손길은 어디서 느낄까 ?
그 크고 깊은 지리를 어찌 메워야 할까
나는 아주머니이 형수라기보다 어머니 같은 분이셨고 충분히
그 역할을 하셨다고 본다.
우리 형님한테는 현숙하고 알뜰한 아내였으며 ,
우리 조카들에게는 훌륭한 어머니 이었으며 ,
우리 집안에서는 큰 기둥 이었으며 ,
우리 형제들한테는 더없는 구심점 이었으며 ,
동네에서는 조미료 같은 아주머이 섰다 .
아주머이가 돌아가신 것은 우리 집안의 큰 손실이고 ,
우리 모두의 아픔 이다 .
한 가지 다행이고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지난해부터 교회에 나가셨다는 사실이다 . 또 지난 부활 주일에 세례도 받으셨단다.
정말 다행 이다 . 돌아가신 모습을 보니 참 평안해 보였다 .
나는 ,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 라는 찬송을 떠 올리며 많이 울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찬송을 부르며 울지 않았다 천국에서 만날 테니까 아주머이 가 좀 일찍 가고 우리도 곧 따라 갈 테니까 .
“천국문서 만나보자 그날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시간 늦지 않도록
만나 보자 만나보자 저기뵈는 저천국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그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형님도 걱정이다 자식 여섯이면 뭣하나 민들레 꽃씨처럼 다 날아가고 외로운 그루터기 만 되어버렸으니 , 그럴 줄 알았으면 집이라도 좀 작게 지었으면 좋았을걸. 두고 온 형님생각에 마음이 쓰렸다 하지만 당사자인 형님 마음만 하겠는가, 또 눈물이 난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도 슬펐는지 자꾸 내 눈물처럼 비가 내린다.
2008. 6. 5 돌아가신 형수를 기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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