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글이라고/문학의 언저리(수필)

3쾌의 위(三快之上)

hobakking 2019. 4. 15. 10:34

3쾌 보다 더위를 추구한다.

 

3쾌 하는 사람은 건강하다. 아니 건강한 사람은 3쾌 한다.

둘 다 같은 말이다.

3쾌라 함은 쾌식(快食) 쾌면(快眠) 쾌변(快便) 을 말 한다.

다시 말해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당연한 것 일지 모르나. 이것이 쉬울 것 같으면서 힘든 사람도 있다.

잘 먹는 것에 대하여 나는 일 년 열두 달 세 끼니를 다 찾아 먹는 사람이다.

식보가 보중에서 제일 이라는 말도 있지만, 역시 내경험으로 보면 맞는 말 이다.

밥맛없다는 사람을 향해 나는 그런 때는 입맛으로 먹으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그런 나도

몇 년 전 담도가 먹혀 하루 입원한 끝에는 도무지 입맛이 없어 며칠 애먹은 적이 있었다.

도무지 구미가 안 당긴다는 사람 식욕이 없다는 사람 그런 사람은 건강이 아무래도 덜 좋을 것이다.

또 잠잘 자는 것, 나는 머리가 땅에 닫자마자 곧 잠이 든다.

잠 잘 때는 천둥을 쳐도 모른다. 아침까지 숙면을 한다.

그러나 낮잠은 안 잔다 어느 순간이든 자려고 눈만 감으면 5분 안에 잠을 잘 수도 있다.

성경 시편에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먹는 것 못잖게 잠도 잘 잔다.

그러나 아내는 잠이 안 든다며 밤새 뒤척일 때가 있다

한밤중에 tv 를 보지 않나 스마트폰을 보지 않나, 그러나 잠이 안와 그런다는데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싸는 것도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그것으로 인해 고생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소릴 들었다. 식이요법을 한다. 장운동을 한다.

약물에 의존 한다 등등 고생을 한다는데, 쑥쑥 해결하는 것도 큰 복이다.

그런데 그 세 번째 문제에 대해서 지난달 산에 가서 옆에 산우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데.

화장실에서 자기가 본 변 을 눈으로 보는 것이 못마땅해서 변기의 구멍을 좁혀

자신이 안보이게 했으면 좋겠다고 그것을 자신이 연구를 하는 중 이라고 말하니.

옆에 친구가 어쩌면 자기 생각과 똑 같으냐고 자기도 그 생각을 쭉 해오고 있었다며 맞장구를 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내가 그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변은 눈으로 꼭 확인해야 해요”

낯모르는 사람들이 내끼어듦에 당황했는지.

“아니 왜요?”

“변을 보고 건강을 확인해야 해요”

그분들은 내말에 일체 대구가 없었다.

말 같잖아 그랬는지 자기 말이 경솔해서 그랬는지 그건 모르겠다.

그렇다, 자기가 본변을 보고 건강을 체크해야한다.

몇 년 전에 내가 혈변을 보았었다.

놀라 병원에 갔더니 심상찮다며 대장 내시경을 해보자고해서 검사했는데 다행히 말짱해서

돈 아깝다고 농을 했지만,

대장암이 진척되어 혈변을 보아도 아까 산우모양 안보고 계속 시간을 끌었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혈변이 아니더라도 과식을 했는지. 자신의 몸에 안 맞는 음식을 섭취했는지 그걸 보아야 알 수 있다.

3쾌를 뛰어넘어 더 건강하게 살기위해 오늘도 나는 개천 길을 걷는다.

오래살기 위함이 아니다. 사는 동안 건강하게 3쾌 그 위를 추구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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