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누나한테 전화가 왔다.
날씨도 꿀꿀한데 포장마차에서 술이나 한잔 했으면 좋겠단다.
연대 앞 포장마차는 밤이 되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너무 많아 단속을 못하는 것인지 일부러 안 하는 것인지
해가 떨어지면 어디서 오는지 꾸역꾸역 리어카에 짐을 가득 실은 포장마차부대가 밀려온다.
멀찍이 차를 주차해 놓고 가보니 정숙누나는 먼저와 있었다,
소주잔이 두 개 놓여있지만 나는 오뎅과 가락국수를 시키고, 우선 술 한 잔을 따라 주었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별일 없다고만 한다, 그러면서 집에서 시집을 가라고 마구 성화란다.
남자는 있느냐고 물었더니 집에서 미는 한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누나는 맘이 썩 내키지 않은 눈치였다.
결혼 자체가 맘이 없느냐 남자가 맘에 안 드느냐 물었더니 둘 다란다.
일환이만 같으면 딱 인데 나이도 어리고 ,직장도 없고 그래서 갈등이란다.
나는 남자만 괜찮으면 그냥 눈 딱 감고 가라고 밀었다,
남자는 인물 갖고 사는 것이 아니라고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말을 읊었다.
누나도 그렇기는 그렇다고 말은 한다.
누나 혼자 술을 반병이나 먹었을 때 고만 먹으라고 술병을 치웠다 그리고 국수를 먹게 했다.
밖은 부슬부슬 비가 오는데, 누나를 차에 태우고 술을 깨게 할 겸 서오릉 쪽으로 갔다,
서오릉 뒷길에는 길가에 차가 여러 대 주차되어있었다.
그 쪽 줄에 주차하기 위해 천천히 전진 하는데, 어느 차는 차체가 제법 심하게 흔들거렸다,
이상해서 다음 차 그 다음차를 유심히 살펴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흔들림은 한결같았다.
일환은 이유를 알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차를 맨 뒤에 주차를 시키고 사이드 블레이크를 걸었다.
잠시 후에 는 우리 차 뒤에도 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일환은 정숙의 입술에 긴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달덩이 같은 가슴도, 그리고 조수석 의자를 최대 뒤로 늘리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왜 그래?
몰라서 물어? 여기 긴 차 행렬 다 똑같은데. 목적은 하나 이것이야.
전에 황 선생님과 뒤 좌석에서는 영 불편 했는데. 역시 사람은 진화하고 발전하는가보다.
누나의 속옷 하나만 벗기면 되었다 자신 것은 걸친 채로 가능했다.
그러나 장시간은 왠지 불안해서 불가능했다. 그냥 아쉬운 대로, 해갈만,
누나를 연희동에 내려주고 집으로 향했다,
일환은 돌아가며 생각했다, 이것이 옳은 짓인가, 만일 내 행동을 부모님이 아시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이제 이쯤에서 모든 걸 청산해야 갰다고, 마음먹는다.
일환의 한번 웃음에 여자들은 얼마나 가슴 설레고 열광했던가, 수십 명의 여자를 유린하고
망가트린 몹쓸 짓이 이젠 점점 후회도 되고, 앞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에는 많은 여자를 만나야 하겠기에 분초를 쪼개서 상대해야하는 불안감 ,
이쪽저쪽 불려 다니며 낭비하는 시간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권태롭다.
이제는 이쯤에서 현실도피를 했으면 하는 것이 일환의 심정이었다.
이젠 몇 개월 지나 2학년이 끝나는데 차라리 군대를 갔다 오려고 생각하고 있다.
다음날 결심이 변하기 전에 병무청에 가서 자원입대서 를 쓰고 왔다.
엄마 아빠가 아시면 뭐라 하실지 몰라도 이왕 갈 거 빨리 갔다 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생각했다.
이제 며칠 있으면 현서가 학력고사를 본다, 생각난 김에 전화해서 격려를 해 주었다,
현서는 오빠의 전화가 큰 힘이 된다고 기뻐한다.
현서야 너 학력고사 마치면 제일먼저 뭐하고 싶어?
오빠하고 여행 가고 싶어,
그것말구,
그다음엔 오빠처럼 면허를 따고 싶어,
그래 그건 오빠가 도와줄 수 있다.
시험 날 오빠가 태워다 줄까?
나는 그랬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태워다준데,
응, 알았다 ,현서 파이팅!
고마워 오빠,
현서가 학력고사를 봤다, 전화를 걸어 잘 보았느냐 물으니 목소리를 통해 느낌은 잘 본모양이다.
저녁에 한사코 나를 보겠단다,
차를 가지고 현서네 집 앞에서 현서를 태웠다. ,
그동안 수고 많았다 , 그런데 점수 안 맞춰 봐도 돼?
지금 점수 맞춰본다고 일점이라도 가산 되?
현서의 여유와 배짱이 부러웠다,
그래 학교는 정했어?
엄마 아빠는 신림 대 가라고 하지만 자신이 없어, 그래서 안암 대 갔으면 해,
왜 하필 그쪽이야?
오빠랑 라이벌 먹고 싶어 서지, 히히히!
그래 아무러면 어떠냐!
저녁 먹어야지,
응 같이 먹어,
오빠가 그동안 수고 한 현서에게 맛있는 거 사줄게. 뭐가 좋을까?
스테이크 먹을래,
그래 , 스테이크 먹자.
운전 시험 신청은 언제 할래?
내일 당장 할까?
그래, 오빠가 데려다 줄게 같이 가,
다음날 운전면허장에 현서 접수를 시키고 돌아왔다,
일주일 후에 시험이 있었는데 현서는 첫 번에서 합격을 했다.
내일부터 당장 연수 하자 오빠가 시켜줄게,
아침 일찍 현서를 태우고 교외로 빠져 나갔다 운전 감각부터 익히게 하고 싶었다.
앞으로 가는 것 이야 누군들 못하랴만 감각을 먼저 익혀야 좋을 것 같아서다,
처음에는 40km 만가도 너무 빨라서 무섭다 그리고 반대편 차가 자신을 들이 받을 것처럼 대들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그래서 감을 익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현서는 알려준 대로 곧잘 했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는 미리 천천히 나눠밟고,
차가 회전할 때는 깜박이라는 방향지시등을 언제나 켜야 해,
그런대로 침착하게 잘 따라한다, 그러다가 또 깜박이를 안 켜고 방향을 돌때는
큰소리로 깜박이 하고 주의를 줬다,,
사단은 거기서 났다 오빠는 왜 귀먹은 사람 나무라듯해?
내가 언제,
지금 큰소리 쳤잖아,
미안해, 잘 하라고 한다는 게 그만,
그러다 또 깜박이를 안 켜고 들어가다 나중에 켠다,
나는 또 대갈이 먼저 박고 깜박이 켜냐?
고 소리 질렀다,
오빠는 또 왜 소리 지르고 야단이야,
네가 못하니까 잘하라고 그러지.
그리고 대갈이가 뭐야 상스럽게?
그럼 대갈이보고 대갈이라 하지 대갈님이라 하냐?
이렇게 옥신각신 다투다 급기 아는,
나 운전 안 할래,
하고 토라진다.
그러면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한 번 또 그랬단 봐라,
그럼 어쩔 건데? 나 원 참 선생이 학생 비위 맞추며 가르치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은 왜 못해?
무슨 말 야?
2년 전 오빠 운전하다 달달 떨던 기억 안나?
내가 그때 떨던 건 너 다칠까 무서워 떨었지 운전 못해 떨었냐?
암튼 떨었잖아, 나는 지금 떨지는 않잖아,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나만 못하니까 그렇지,
참! 말을 해도 오빠가 내 맘 들어갔다 나왔어?
나 기분 나빠 내일부터 운전 안 해,
안하면 저만 손해지,
이렇게 옥신각신 다투다 서로 골라서 집에까지 오는 동안 아무 말도 안하고 돌아 왔다,
현서가 차에서 내리고 , 내가 다시 운전하여 집으로 왔다,
다음날 차를 몰고 현서네 집 앞에 서 문자를 날린다.
집 앞 이야 운전연습가게 나와,
잠시 후 활짝 웃는 모습으로 현서가 나온다.
어제 이야기는 하지도 않는다,
오빠 오늘은 뭐 가르쳐 줄 거야?
시내 번잡한곳 다녀보자고,
끼어들기는 깜박이를 켜서 뒤차가 알 수 있도록 하고 될 수 있으면 차 한 대 보내고 다음에 들어가도록 해,
복잡할 때에는 창을 내리고 손으로 양해를 받은 다음 들어가는데, 들어 갈 때도 뒤차가 멈춰주나 를 확인해야 해,
양보 안하고 그냥 오는 차에 받히면 이쪽 책임이니까.
내가 먼저 갈 때에는 클락션을 울려 상대에게 알리고, 절대 저쪽에서 보았겠지 하는 판판은 해선 안 돼,
들어 갈 때는 멈칫 멈칫 하지 말고, 신속하고 침착하게 들어가야 해.
편도 3차선에 맨 오른쪽은 대개 직진과 우회를 겸하게 되는데. 그래서 길도 약간 넓어.
직진할 때는 2차선 쪽 금에 바짝 붙어 우회 하는 차를 도와주는 것이 배려이지,
최고의 운전은 신호 잘 지키고, 양보 잘하고, 천천히 흐름에 맞게 가는 것이 잘하는 운전이야,
이렇게 말을 해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때그때 한 가지씩 가르쳐야 알기가 쉽다.
오늘은 현서가 잘못해도 꾹 참고 가만 가만 말을 히니 내속이 까맣게 타는 것 같았다.
3일째 날은 고속도로를 달려보기로 했다, 차를 경부 고속도로로 들어가 처음에는 80km 정도 달리다 100km 까지 올렸다 현서는 이제 긴장이 되어 아무 말도 안 한다 내가 물어도 대구도 못 한다, 세 시간쯤 걸려 대전에 도착했다,
한적한 길가에 주차 하고 이제야 숨을 돌린다,
무서웠지?
응, 떨렸어, 손에 땀 좀 봐,
등에 기대고 좀 쉬어, 오빠가 마실 것 좀 사올게.
음료 캔 두 개를 와 과자를 한 봉지 사들고 차로 와서 먹었다,
오빠와 여행 온 것 같네,
그래 대전까지 왔으면 여행 온 거 맞아,
오빠 , 나 이제 성인이야,
네가 무슨 성인이야 오빠가 보기엔 아직 쪼그만 꼬마로 보이는데,
체, 두 살 차이면서,
그래도 오빠 눈엔 네가 애기여,
언제까지 그렇게 볼 건데?
아마 영원히,
체, 할머니 되도 그럼 애기 네,
그런 샘이지.
현서가 자신이 이제 성인이라고 선언하는 뜻을 일환은 잘 안다,
그러나 눈치 없는 듯 짐짓 모르는 듯 현서 말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몇 번을 더 연수 시켜 이젠 운전을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집이 날 리가 났다,
엄마는 얼굴이 상기가 되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나한테 물었다, 무슨 일 가지고 그러는데, 설명도 안 하고
나한테 물으면 내가 어찌 아느냐고 내가 되물었다.
네가 오늘 영장이 나왔는데, 지난번에 연기신청을 했잖으냐, 이상해서 병무청에 문의해보니 네가 자원입대를 한다고
신청했다는구나, 정말 네가 신청 했니?
신청 했어,
왜 엄마 아빠랑 상의도 없이 네 맘대로 해? 네가 고아냐?
엄마는 화를 낸다,
아무 때 가도 갈 것 , 지금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 엄마 아빠 무시해서 그런 건 아냐, 엄마가 이해해줘,
몰라, 지금 누나도 유학 가서 너 하나 남았는데, 너까지 군대 가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그러니?
금방 제대해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 올 거야,
일환 엄마는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아빠한테 말해서 다시 취소시킬 테니 그리 알아, 엄마는 너 군대 보내고 못살아,
엄마 지금 군대가 몇 명 인줄 알아? 60만이야, 그 군대 한명 한명이 다 그 사람들 부모님의 귀한 아들 일 텐데,
그 부모님들이 다 엄마 같으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킬까?
엄마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저녁때 돌아오신 아빠는 엄마한테 그 말을 듣고는 아무말씀도 없었다.
이제 한 달 남았다.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내야 할까?
우선 학교에 휴학신청을 해놓고 그 다음은? 일환은 더 생각이 안 났다,
그냥 하루하루를 지내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