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청춘 브라보 를 연재하며.
소설은 그야말로 소설(fiction) 이다.
현실에서 일어 날수도, 전혀 얼토당토않은 황당한 내용일 수 있다.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력을 짜서 전개해 나가는 만큼
사상이나 정신건강을 의심 안 해도 될 것 같다.
여기 주인공 김 일환도 가상인물이며,
앞부분에 약간의 외설스런 내용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조명한 것뿐이고,
후에 어떤 사건으로 개과천선하여 잔잔한 사랑과 감동으로 귀결 되는 애정소설이다
D 여고 2학년 1반 교실 ,
“차렷 경례” 선생님 안녕 하세요?
네 안녕 하세요? 반갑습니다.
방금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은 김 일환입니다.
일환은 돌아서서 칠판에 크게 내 이름을 썼다.
김 일환,
그때 뒤에서 어떤 학생이 소리쳤다
“선생님 이름이 너무 싸게 느껴져요”
그 소릴 듣고 온 교실이 떠나가게 와르르 웃는다.
일환은 다시 이름 밑에 한문으로 金 日 煥 이라 적었다,
내 이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할머니께서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작명소에서 거금을 주고 지어온 이름이다.
해같이 빛나라 해서 날일 빛날 환 金 日煥 ,
그러나 옛날 60년대 화폐단위가 환이었대서 친구들도 나를 부를 때 일원 이라 부르고 또 어떤 친구를 “열배 튀겨 일원”이라 부르기도 했다 십 환이 나중 화폐 개혁 후 1원이 되었기에 열배를 부풀려서 일원이란 뜻이다 .
오늘도 첫 수업부터 학생들한테 내 이름이 놀림감이 되었다.
아무리 여고생 때는 낙엽 구르는 것만 보아도 까르르 배꼽잡고 웃는다지만,
오늘 첫 수업부터 밀리면 앞으로 선생질하가 어렵다 .
일환은 웃지 않고 근엄한 표정으로,
자 고만 떠들고 다 같이 국어책 펴,
일환은국어 선생으로 이 학교에 부임해 오늘 첫 수업이다.
오는 날이 월요일 이었으면 조회 시간에 교단에 올라가서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교장선생님의 소개를 받았겠지만
오늘이 수요일이라 교실에서 교감선생님의 약식 소개로 대신했다 어쩌면 일환으로서는 다행이다
전교생 보는 앞에서 높은 교단에 올라서서 떨리지는 않겠지만 왠지 어색할 것 같다.
반장! 일어나서 처음 3페이지부터 읽어봐,
아까 차렷 경례를 외쳤던 학생, 언 듯 보아 참 예쁜 학생이다 월드스타 강수연도 닮은 것 같고, 탤런트 전인화도 닮은 것 같다.
이런 시골에도 저렇게 예쁜 학생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반장은 일어나 책을 읽는데 목소리도 메조소프라노 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일환은 책을 눈에 맞춘 채 한발 두발 반장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보아도 예쁜지 10m 미인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윽고 반장 바로 앞에 머물렀다 왼쪽가슴에 이름표를 달았는데 신 정애라고 적혔다.
그래 이름은 신 정애로구나,
일환은 정애가 책 읽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흠 잡을 곳 없는 예쁜 학생 이다.
정애는 일환이 옆에서 쳐다보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책을 읽다 약간 더듬거리고 얼굴이 벌개지 더니.
책 읽기를 그치고 일환을 쳐다본다.
일환은 들킨 것 같아 당황되었으나 태연히 정애가 읽던 곳에서 받아 읽어 내려갔다.
교탁에 와서 잠깐 틈을 타 정애 쪽을 보니 정애는 팔을 책상에 올려놓고 엎디어 있다.
한참 내용을 설명하고 질문을 받고 이러는 사이 수업 끝을 알리는 벨이 길게 울린다.
여러분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치고, 여러분 중에 D읍에 사는 사람 손 좀 들어봐
손든 사람을 보니,거의 절반가량이 D읍 거주 학생이다.
왜 그러느냐면 내가 이곳이 처음 발령지라 하숙을 해야 하는데 여러분 주위에 하숙 치는 집 혹 아는 사람 있어?
아무도 아는 체 안 한다.
그래 됐어,
하고 나오려는데 반장 정애가 선생님 D읍 아니면 안 돼요? 하고 묻는다.
안될 거야 없지만 얼마나 떨어졌는데?
약 2km 요. 저희 옆집이 하숙을 치는데 한번 알아볼까요?
그래 반장은 시간 나는 데로 교무실로 좀 들려. 이상.
차렷 경례 , 경애의 예쁜 목소리를 뒤로 하고,
후유! 첫 수업이 무사히 끝났다 안도하며 교무실로 향했다.
정애가 교무실로 온 것은 점심시간이 반절쯤 지난시간이었다.
“정애야 어서와”
어머! 제 이름 아세요?
그럼 알고말고! 아까 책 읽을 때 봤지.
정애는 또 약간 얼굴을 붉힌다.
하숙 친다는 그 집 전화번호를 알아?
그 집은 모르고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할게요,
그래 여기서 엄마한테 전화 해봐!
정애는 교무실전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건다.
이윽고, 엄마가 가서 물어본다고 했어요.
조금 있다 전화 한다고요 .
일환은 빈 의자를 갖다놓고 정애한테 앉아서 엄마 전화를 기다리라 했다.
점심은 먹었어?
예! 수줍게 대답한다,
기다리는 동안 이거 먹어,
하면서 아까 옆에 선생님이 먹으라고 놓고 간 야쿠르트를 정애한테 권했다.
아니에요 선생님 드세요.
아냐 나는 먹었어, 하면서 빨대를 꽂아 정애한테 주었다.
정애는 수줍게, 잘 먹겠습니다 하며 받아서먹는다.
빨대로 쪽쪽 빠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쳐다보는 일환을 의식 않고 정애가 살며시 웃고 나도 웃고,
따르릉 네 D여고 교무실입니다.
예! 선생님 2학년 신 정애 엄마인데요.
정애 혹시 거기 있으면 바꿔주세요,
네 ! 안녕하세요?
정애 바로 옆에 있습니다, 잠시 만요,
엄마와 통화하던 정애는 일환을 보며 “선생님! 방 있데요” 한다.
그래 오후에 간다고 말씀드려,
엄마 선생님하고 같이 갈게, 하며 전화를 끊는다.
정애 오늘 몇 교시수업이지?
“6교시에요”
그럼 6교시 마치고 나하고 같이 가보자 , 잘 부탁해!
예! 이따 봬요,
수업을 마치고 정애가 교무실 밖에서 기다린다.
뭐 타고 가는 거야?
2km 인데 걸어가죠, 선생님!
항시 걸어 다녀?
예!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면 집에 가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있는데 걸어가면 30분이면 가요 선생님,
그렇구나, 정애는 다리가 튼튼하겠는걸!
호호호! 튼튼해요 ,
정애네 동네 가는 길은 아직 포장이 안 된 흙길 이었다.
정애는 차가 지나갈 때 먼지가 난다며 코를 막고 돌아서서 먼지가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곤 하였다 처음에 그 모습이 우스웠지만 삶의 지혜라는 걸 곧 깨닫고 나도 따라했다.
둘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정애네 집 가는 길이 이 길밖에 없니?
저쪽 산길이 좀 가까운데요, 그리 가면 머슴아들이 휘파람을 불어 싸서 안 다녀요.
그렇구나, 정애가 예뻐서 그럴 테지만 앞으론 선생님이 보디가드 해야겠는걸,
정애네 는 몇 식구야?
제 위로 오빠 둘이 있고요, 아빠 엄마 까지 다섯 식구 예요,
오빠는 대학생이겠네.
큰 오빠는 대학 2학년이고요 작은 오빠는 고3 이에요,
그럼 연년생이야?
예! 연년생이에요,
아버지가 돈 많이 버셔야겠다, 대학생아들에 고3 고2 면 부모님이 힘드시겠네! ,
아빠보다 엄마가 힘들어 하셔요,
힘들 땐 엄마가 아빠 만난걸, 후회도 하셔요.
우리 3남매 말고도 얼마 전까지 삼촌 둘에 고모까지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켰어요,
재산이나 많으면 모르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바듯 고등학교 졸업하시고,
면서기 시험에 합격 하셨대요,
면서기를 십년 넘게 다니시다, 월급을 조금 더 준다고 해서 지금의 신용협동조합으로 옮기셨어요.
엄마는 신앙 없으면 벌써 쓰러지셨을 거예요,
엄마는 제가 태어나자 엄마 같은 팔자 안 닮게 해달라고 늘 기도 하신데요,
부자 집으로 시집가게 해달라고, 그러면 하나님께 교회를 예쁘게 지어 바치겠다고 서원도 하셨대요,
그런데 서원이 뭐야?
하나님과의 맹서 같은 거래요, 요구한 것을 이루어 주시면 그걸 꼭 하겠다는 약속 같은 거래요.
성경에 사무엘 어머니 한나 는 저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고 아들을 얻었는데요,
정말 어린 사무엘을 성전으로 올려 보냈어요.
아 그렇구나, 정애는 부잣집으로 시집가야겠구먼,
호호호 그게 맘대로 되요?,
정애의 얼굴이 약간 볼그레해 졌다.
정애도 교회 열심히 나가?
예, 모태신앙예요,
모태신앙이 뭔데?
엄마 배속에서부터 갖은 신앙을 모태신앙이라 그래요.
일요일은 꼭 교회에 가니?
그럼요 안 빠지고 다니죠.
교회에서는 무엇 하는데?
올부터 보조반사 일을 해요.
보조 반사가 뭐야?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을 교회에서는 주일학생이라 부르는데요,
주일학생을 가르치는 보조 교사 일을 하죠.
그럼 정애도 선생님이네,
호호호 보조인데요 뭐,
선생님 저기 보이는 곳이 저희 동네에요.
아 그래? 동네가 아담하고 평화로워 보이는구먼,
저 오른쪽 산 밑 슬레이트집이 저희집이구요 그 옆집이 지금 가는 하숙 친다는 집이예요.
정애 말 듣는 재미로 금세 왔네,
처음 뵌 선생님한테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한 것 같아 흉이나 안보실지 모르겠어요.
왜 흉 안보겠어 흉보지 허허허 !
이런걸, 두고 격이 없다고 하지 사람과 사람 사이엔 격이 없어야 친해지지 사람 만나면서 서로 칸막이를 해 놓으면 어디 친해지겠어?
다음엔 선생님 댁 이야기 해주세요.
응. 알았어,
선생님 저기 저희 엄마에요
집 앞에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분이 정애 엄마시란다
미리 마중을 나와 계셨다 ,
그러고 보니 정애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 시골에서 살아서 그렇지 가꾸었다면 빼어난 미인일 것 같다.
나는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김 일환입니다.
예! 선생님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집이에요 이리가시죠 정애 엄마는 하숙집 쪽을 가리킨다.
정애는 그만 들어가 봐 수고했어,
정애를 들여보내고 정애엄마와 그 집으로 들어섰다.
집주인은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다 앞치마에 손을 대충 씻으며 나온다.
안녕하세요? 신세 좀 지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이 방이에요 주인아주머니가 가리킨 쪽은 싸리문 옆에 안채와 조금 떨어진
창고하고 붙은 방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한번 둘러보라고 하신다.
일환은 댓돌위에 신발을 벗어놓고 방에 들어섰다.
방은 두 평 조금 넘을까하는 작은 방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작은방은 또 처음 본다.
벽지도 싸구려벽지로 직접 발랐는지 무늬가 들쭉날쭉 이다.
그러나 아주 살집도 아닌데 임시 머무를 집인데 이슬만 피하면 과만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데요, 있겠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방은 따듯한가요?
그럼요 쩔쩔 끓어요, 하며 주인아주머니는 너스레를 떤다.
하숙비는 얼마인가요?
한 달에 30만원씩 일 년 치 선불이고요, 식사는 하루 두 끼 아침하고 저녁 드려요.
매달 내는 것이 아니고요?
정애 엄마가 대신 대답한다. 선생님 여기서는 그래요,
아 , 그렀습니까?
계좌번호 적어주시면 내일입금하고 들어오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리고 잘 부탁합니다.
일환은 다시 한 번 살 방을 둘러보고 돌아 나왔다.
문 앞에 나오니 정애가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교복 입었을 때보다 더욱 화사하고 예뻐 보였다.
정애도 결과가 몹시 궁금했던가보았다,
내일 들어오시기로 했다, 정애 엄마의 설명에 정애는 잘되었다며 밝게 웃는다.
정애 어머니 감사했습니다, 정애도 수고했고,
그만 가보겠습니다.
아니 선생님 이왕 오셨으니 찬은 없지만 저희 집에서 저녁 잡수고 가세요.
아닙니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뵙게 생겼는데요, 나중에 한번 초대해주십시오,
정애도 선생님 저녁잡수고 가세요, 하며 조른다.
아냐, 나중에,
일환은 정애 엄마께 인사를 하고 정애한테는 손을 들어 인사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 나왔다.
터벅터벅 황톳길을 걸어 나오는데 배에서는 연신 쪼르륵 쪼르륵 소리가 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도 안 먹었다.
어젯밤에 여관에서 자고 아침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점심시간에 밥 먹겠다고 밖에 나갔다오기도 뭣하고 도시락을 싸올 수도 없었다.
그나저나 하숙집에서도 아침과 저녁만 준다고 하니 점심이 걱정이다.
돈을 더 준다고 도시락을 싸달라고 해볼까?
에이, 어찌 되겠지 뭐,
D읍에 도착해서 우선 식당으로 들어갔다,
원조 순댓국이라고 쓴 간판 밑에는 택시가 여러 대 주차되어있었다.
여기가 기사식당인가보다.
앉자마자 메뉴판을 보며 순대정식을 주문했다.
일분도 안 되어 순대와 머리고기가 섞인 고기 한 접시 그리고 순댓국 한 그릇 그리고 깍두기와 김치를 담은 쟁반을 놓고 간다.
기불택식(飢不擇食) 이라 했던가, 허겁지겁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접시엔 퍼석거리는 간 몇 조각만 남았다.
자판기에서 100원을 넣고 커피를 한잔 빼서 먹으며 여관으로 왔다.
여관에 도착한 나는 씻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그래 엄마다! 오늘 잘 했어? 밥은 먹고? 살집은 구했니?
엄마는 숨도 안 쉬고 연속 물어대신다 ,
엄마 한 가지씩 물어, 오늘 잘했고, 밥도 먹고, 하숙도 구했어,
그래 토요일 날은 오는 거지?
엄마 맘 안 놓여 내가 내려갈까?
오긴 어딜 와 엄마 토요일은 꼭 갈께 염려 걱정 붙들어 매셔,
그래 밥 잘 먹고, 엄마 전화 오래 못해 끊어 나는 엄마가 말하는 도중에 전화를 황급히 끊었다,
전화기 앞에 “통회는 간단하게” 라고 쓴 이 말이 자꾸 거슬렀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가 몹시도 길게 느껴졌다.
정신적으로 그런지 피곤이 몰려온다, 눈꺼풀이 무겁다.
일환은 D 읍에 내려갈 때 간단한 옷가방만 한 개 달랑 가져가고, 차도 핸드폰도 안 가져갔다,
첫 수업을 마치고 , 반장 정애가 소개해준 하숙에서 첫 밤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찾으니 헛간 같은 곳에 판자 쪽 으로 문을 달아 놓았는데 듬성듬성 판자를 대어서 안이 훤히 보인다, 밖에다는 WC (변소) 라고 서툴게 써 놓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큰 시멘트 웅덩이에 기차 침목 같은 거 두 개 걸쳐놓고,
벽에는 손바닥 두 개정도의신문지를 잘라서 철사에 꿰어서 달아놓았다.
그런데 암모니아 냄새인지 인분 냄새인지 코를 들을 수가 없었다,
일환은 방으로 돌아와 어제 정애 어머니가 사온 화장지를 가지고 변소에 앉았다 손으로 코를 쥐고 힘을 썼지만
영 신통하게 안 나온다,일환은 참았다가 학교에서 보려고 화장지만 놔두고 그냥 나왔다,
다른 것은 다 참겠는데 화장실의 역겨운 냄새가 곧 토할 것만 같았다.
일환은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 만 같았다
아침을 먹고 출근하기위해 나오니 벌써 정애는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빨리 가자, 여기서 학교까지 몇 분 걸리니?
보통 30분 걸려요,
정애 가방이 무겁겠다,
별로요, 이리 줘봐, 선생님이 들어보게.
가방을 받아들고 보니 묵직한 게 여학생들은 힘이 들것 같았다.
일환은 가방을 들고 걸음을 걷는데,
이리주세요,
잠간만 들고 갈게,
안돼요, 남들이 본단 말예요,
남들이 보면, 선생이 학생 가방 좀 들었다고 잘못했다고 할까?
창피하잖아요,
예전에는 공부 못하고, 힘만 센 놈이 공부 잘하는 애 가방 들어줬다고 하더라,
여학생이 이렇게 무거운 가방 들고 다니면 팔 늘어나고 키도 안 크는 것 아닐까?
선생님은 키가 몇이세요?
178cm 야, 정애는 가만있자, 162쯤?
어떻게 아셨어요? 정확하셔요,
몸무게도 맞춰볼까, 에이 알지만 말 안할래,
일환은 수많은 여자를 대하면서 키와 몸무게는 어림잡아 도 거의 알았다 이것이 경험에 의한 노하우라면 노하우인 것이다.
제 키가 작지요?
아냐, 적당해 그리고 아직 나이가 있으니 2~3cm 클 수가 있어,
많이 컷 으면 좋겠는데,,
키 큰 것이 뭐가 좋아, 아담해야 좋지,
선생님은 키 큰 거 안 좋아하세요?
안 좋아 정애정도가 적당해,
정애는 알게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걸음을 제법 빨리 걸어 20분 조금 넘어 도착했다,
오후에 같이 갈까?
예, 그래요,
그럼 이따 봐,
4교시를 마치고 점심시간이다, 하숙에서는 점심을 안 싸준다고 선언해서 기대도 안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도시락을 펴놓고 드시는데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뭣하다,
그런다고 매일 밖에 나가 사 먹을 수도 없는 것이고,
일환은 밖에 운동장으로 나왔다,
학교 지형과 구조를 익히려고 한 바퀴 돌아보다가 운동장 끝 벤치에 앉아 학교 교사를 쳐다보고,
옆에 수도간이 있기에 물을 조금 마셨다, 그리고 또, 의자에 앉아 앞으로 의 생활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였다,
한편 정애는 4교시 마치고 점심을 맛있게 먹고는 우연히 운동장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저 운동장 끝에 김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선생님은 조금 있다 수돗물을 들이키신다,
정애는 그때서야, 아참, 하숙집아줌마가 점심을 안 주신다고 했었지? 선생님이 얼마나 배가 고프시면 수돗물은 들이키실까?
그런 줄 알았으면 내 것이라도 드릴 것을 정애는 선생님이 몹시 불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벤치에 앉아계신모습도 웬 지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객지에 처음 오셨다는데,
정애는 오후 내내 우울했다 머리에는 선생님이 수돗물을 마시던 생각만 떠올랐다.
하굣길 운동장에서 선생님을 만나 같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선생님!
응?
배고프시죠?
이니,
점심 못 드셨잖아요,
한 끼 굶는다고 어떻게 안 돼 전에는 일주일도 굶어 본적 있는데,
어머나! 일주일을요? 왜요?
정애는 선생님 집에 쌀이 떨어져 굶은 것으로 오해했다.,
아파서 그랬어,
아. 예!
학교에서 돌아온 정애는 엄마한테 사정을 한다.
엄마 선생님 도시락 싸주면 안 돼?
지금 도시락도 아빠 오빠 너까지 셋씩이나 싸는데 무슨 소리야?
아까, 점심때 선생님이 배고파서 운동장에 앉아 수돗물을 마시고 계셨어, 그걸 보는데 내 마음이 아팠어,
정애 엄마도 배고파서 수돗물은 먹는 김 선생 모습이 그려지고, 객지에 나와 고생하는 김 선생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싸는 김에 한 개 더 쌀까, 생각했다,
그런데 김 선생 점심 굶는데 네가 왜 가슴이 아파?
모르겠어,
내일부터 싸줄게 갖다드려,
엄마 고마워,
계집애도,
일환은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동네 뒷산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거리가 약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화장실이 그렇다보니 배변습관을 조절하여, 밤에 운동 삼아 산에 가서 해결하려고 생각 했던 것이다,
전에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인도에서는 90%가 화장실이 없고 아침에 저마다, 사이다병 같은데다 물을 담아 들고서
산으로 간다고 읽었었다, 일환도 당분간 인도 사람 흉내 좀 내보려고 하였다,
산 중간에 안성맞춤인 곳이 있어 점찍어 두었다.
다음날 출근길에 정애와 나란히 걷다가, 그 가방 말이다,
등산배낭처럼 등에 짊어지고 걸으면 훨씬 쉬울 텐데, 왜 그런 생각들을 못하는지 모르겠어, 하며 혼자소리를 하는데,
그럼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좀 내어보세요,
선생 안 하고 그래볼까?
그리고는 둘이 같이 웃었다,
셋째시간 마치고 정애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손에 뭔가를 들고서, 그게 뭐야?,
선생님 도시락요.
웬 도시락을 가져왔어?
정애는 바짝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매일 가져올 거예요, 맛있게 잡수세요, 하며 밝게 웃으며 돌아갔다..
일환은 정애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맛있게 다비우고는 , 그래도 그렇지 매일 가져오면
부담이 돼서 어떻게 해,
퇴근길에 정애를 만났다,
정애야 선생님이 불상해서, 엄마한테 조른 거야?
아니요, 그냥 싸 달랬어요, 이제 점심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매일 얻어먹니?
이렇게 하자 정애야,
어떻게요?
매일 싸오되, 나는 나대로 사례를 하는 거야,
그러면 사먹고 팔아먹고 하는 건데요?
그렇게 생각 하지 말고, 정애 네서 선생님한테 점심을 대접 하는 거야,
그러면 선생님 입장으로는 너무 감사해서 또 뭔가를 사례하고, 그러면 감사와, 기쁨과 정이 과정 속에서 묻어나지 않겠어?
말씀 듣고 보니 그럴듯하네요,
그 말을 엄마한테 말씀드려 만일 안 그러면 절대 밥 안 먹겠다는 말씀도,
다음날 엄마가 좀 껄끄럼 하지만 선생님 뜻에 따르겠대요,
잘되었다, 그럼 정애야 오후에 도시락부터 사자, 같이 가는 거지?
퇴근시간에 정애를 데리고 그릇가게로 갔다, 보온 도시락 큰 것 한 개사고 정애 것도 예쁜 것으로 하나 샀다,
그리고 가방가게로 가서 도시락 두 개 들어갈 가방 하나 샀다,
가방을 어깨어매고 나오다, 정애야 책가방 열어봐,
왜요,
거기서 책 두꺼운 것 두 권 이쪽으로 옮기자, 책을 두 권을 도시락 가방 옆에 넣으니 꼭 맞게 들어간다.
이제 앞으로 이 가방을 네가 집에서 갖고 나오면, 내가 받아 학교에서 내 도시락만 빼고 너를 주는 거야,
물론 올 때 내가 다시 짊어지고 어때?
훌륭해요, 선생님 머리는 재갈공명 같으세요,
뭔 재갈공명씩이나,
이래서 점심 문제는 해결했다, 도시락 값은 월 십만 원 정도 드리려고 생각했다,
밤에 일환은 화장지를 주머니에 넣고 산을 한 바퀴 뛰어 돌아오는데, 집 앞에서 정애를 만났다, 너 어디 갔다 와?
선생님은 어디갔다오세요?
운동하려고 동네한바퀴 뛰고 와,
저는 선생님 드리려고, 감자 몇 개 가져 왔어요,
그래 고맙구나, 네가 선생님 먹여 살린다, 이리주고 빨리 들어가,
예,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 먹을게.
정애가 나를 챙기고 또 불상하게 생각하여 도시락까지, 여간 고맙지 않다,
내가 남한테 동정받기는 생전 처음이다 일환은 혼자 웃는다.
정애야, 오늘은 내가 서울 집에 가 , 다행히 도시락가방은 없어 편하겠다만 조심해 들어가,
걱정 말고 잘 다녀오세요? 부모님이 너무 좋아 하시겠어요, 선생님도 막내 시라면서요,
그래, 집에 가서 우리엄마한테 네 이야기 많이 해야지,
어머! 흉일랑 보지마세요, 호호!
다음날 학교에서 정애를 먼발치에서만 보았다 그러나 말은 못해보고 미소로 서로 반가움만 교환했다.
점심시간에 잠깐 외출하여 신협에서 하숙비 일 년 치를 송금했다, 이곳에 정애 아버지가 근무 한다고 했는데 , 정애 아버지 연배가 서너 명 이나 있어 어느 분 이 정애 아버지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과를 마치고 여관에 들러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이것을 끌고 어제 그 비포장도로를 갈수가 없어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사위가 어둑어둑하다,
가방을 방에 들여놓고 주인아주머니한테 욕실이 어디냐고 물으니 ,
어제 빨래터를 가리키며 여기서 씻으면 된다고 하신다.
빨래터는 펌프로 물을 빼는 펌프 샘이 있고 그 옆에는 큰 고무 통이 놓여있고 또 세수그릇 인 작은 고무 통이 있었다.
일환은 큰 통에서 물을 퍼서 세수를 하는데 아직 3월이어서 써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세수를 하고 방에 들어가니 주인아주머니가 호마이카 칠을 한 네모난 밥상에 밥 한 그릇, 무국 한 사발, 생선 한 토막에, 나물, 김 몇 장 이 전부인 밥상을 들여놓는다 일환은 시장한터라 생선을 빼놓고는 모두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주인아주머니는 밥상을 가져가며 총각 왜 생선을 안 드셨어? 묻는다.
예! 저는 생선을 별로 좋아 안해서요,
하지만 신경 쓰시지 마세요, 주시는 대로 먹을 거니까요.
밥상을 물리니 밖에서 선생님 하고 정애 목소리가 들린다,
문을 여니 정애와 정애 어머니가 마당에 서있다 .
손에 두루마리 화장지뭉치를 들고서,
들어오세요, 정애 들어와라 ,
딱히 뭐를 사와야 할지 몰라 이걸 사왔어요.
뭘 그리 신경 쓰십니까? 감사합니다.
그런데 뭘 대접해 드릴 것이 없어요.
아니에요 선생님!
이곳에 사시는 동안 이웃사촌으로 잘 지내요 선생님,
예 잘 부탁드려요 정애 어머니,
선생님 실례지만 지금 몇이세요?
스물다섯입니다.
참 좋을 때에요 호호호,
사귀는 여자분 있겠죠?
없습니다.
아니 이렇게 잘생기신 선생님을 여자들이 가만 놔두나?
큰 딸 있으면 사위 삼고 싶은데 호호호.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애와 정애엄마가 인사를 하고 집에 가면서,
정애야 김 선생이라고 했지? 참 잘생겼더라. 키도 훤칠하니 크고,
그치엄마? 선생님 처음 보는 순간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니까.
왜 숨이 막혀 너의 목을 조르디?
엄마도참 !
쪼그만 게 별소릴 다 하고 있어,
너 김 선생과 너무 가깝게 하지 마.
왜?
여학생이 흔히 선생님 좋아하지만 결국 헛물켜게 돼있어,
그리고 김 선생은 나이도 많잖아!
엄마도 아빠와 일곱 살 차이잖아, 선생님과 나도 일곱 살 차이이고,
암튼 엄마 말 들어,
알았어,
.
정애와 정애 어머니가 돌아가고, 일환은 화장실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밖에 나갔다
화장실이 어딘지 진작 물어볼 것을 안채에서 지금 잘지도 모르는 분들 깨워서 화장실이 어디냐 물을 수도 없고,
다행히 시골이라 사람 눈만 피하면 천지가 다 화장실인 것이 다행이다.
일환은 싸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쳐다보니 수많은 에메랄드의 별들, 멀리서 찍 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별똥별들, 그 아름다운 밤하늘에 눈을 고정한 체 시원한 방뇨를 한다.
요를 깔고 방에 누웠다.
아 !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나?
어디서부터 어긋났나?
오늘밤엔 잠 좀 자려나?
영은아! 이런 내 모습이 너는 고소하지?
어떻게 해야 너를 기억 속에서 몰아낸다니.
이 괴로운 심정을 죽을 때 까지 안 지워지려나?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들린다.
주인아주머니가 방이 쩔쩔 끓는다고 말하더니 방은 따뜻해도 외풍이 불어 코끝이 시리다.
오늘밤도 저 부엉이 소릴 데리고 날을 지세 워야 하나?
오후에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도착시간에 맞게 엄마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귀찮게 뭐 하러 나와,
우리아들 빨리 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이 행복을 앞으로도 빼앗지 말아 라,
그래 선생질 할만 해?
남들도 다 하는데 할만 해,
재미있을 것 같애?
응, 재미있을 것 같애,
뭐 힘든 건 없고?
일환은 화장실 이야기를 하려다, 전혀 없어, 하고 말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반기신다,
우리집안에 선생도 나오고, 참!
누나는 교수님도 될 텐데요,
한 2~3년만 하다 올라와, 나도 영원히 사는 것 아니고 빨리 후계수업을 해야지,
알았어요,
일환은 목욕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잠은 잘 자는 겨?
저녁을 먹고 엄마가 물었다,
잘 자지, 어쩌다 악몽 꿀 때도 있지만 비교적 잘 자,
다행이다,
내일 가야지?
그렇지,
김 기사한테 대려다주라고 할게,
아냐, 유난 떨지 마, 버스타고 가면 되는데,
그럼 버스 터미널까지 만이라도,
그러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