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50년이나 된 모임이 하나 있다
그 모임은 우리 고향 이웃 동네에 내가 어렸을 적부터 다니던 교회에 같이 신앙생활 하던 여러 청년분과의 모임이다.
나이는 조금씩 차이가 났으나, 당시 모임의 취지는 우리가 장차 헤어질 수도 있는데 그때를 대비해
친목 모임을 만들기로 했고 그때 열 명의 사람이 모여 신우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였다.
그 후 얼마의 세월이 흐르고 보니 두 분만이 그 교회에 남고 나를 비롯한 여덟 명은 전국으로 흩어져
각자 결혼도 하고 타지에 터를 잡고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씩은 어김없이 부부동반으로 모임을 갖는데 나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유사가 되어
자기가 사는 곳에서 식사 접대를 하고 그간 쌓였던 정담도 나누고 그렇게 우리는 친목을 다지며 5십 성상을 지내왔다,
한편으로는 매년 회비를 모아 회원들 애경사를 챙겼고 모 교회인 후암교회의 중요행사에 찬조금도 내곤 하였다.
우리 모임이 참으로 특이한 점은 그때의 젊디젊은 회원들이 흩어져 각자의 섬기는 교회에서 모두 다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잘했고 모두 다 빼놓지 않고 장로님들이 되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대견하고 크게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새파랗던 얼굴에 흰 털이 돋아나고 곱던 얼굴은 어느덧 쭈글쭈글 주름이 만발한 모습으로 바뀌었으나 지금까지 모임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회장님이셨던 이 장로님이 돌아가시고 또 한 분 정 장로님도 소천하셨고 올해 최 장로님마저
천국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제 나머지 분들도 나이가 들어 예전의 먹었던 의욕과 패기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귀차니즘에 빠져
편한 것만 찾아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50년이 지난 지금은 참석률이 예전만 훨씬 못하다
올해는 내가 유사를 맡아 접대를 해야 할 차례가 돌아왔다
총무를 맡아 수고하는 김 장로에게 전화하여 아무 날이던지 토요일로 날짜를 잡고 회원들이 원하는 어느 장소던
그게 고향 충청도 든 서울이든 그것도 아니면 중간 지점을 정해도 좋고 일단 단톡방에 공지를 올려 의사를 물어
나한테 알려 달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답이 안 온다.
다시 총무 장로에게 물어보았더니 아무도 묵묵부답 모두 조용하다고 하였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참으로 전에 없던 큰 사건이다.
나는 어이가 없고 좀 화도 나고 하여 이쯤 해서 모임을 해산하자는 공지를 띄워보라고 종용했고 총무가 그대로 하니
몇 분이 그것도 괜찮겠다는 연락이 왔다 해서 그 즉시 남은 유재를 N분 하여 나눠갖고 50년 된 모임을 해산했다 ,
한편 기가 막히고 허무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다른 분들도 흔히 나이 들어 모든게 귀찮아 그리한다는 말을 듣고 보니
위안도 되었다.
주위에 여러분들의 사례를 들어보니 나이 들어 우리와 같은 건이 한둘이 아니었다 ,
동창회도 한둘 떨어지고 어느 순간 자동 소멸되어 깨지고,
이 모든 게 나이 때문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어쩔 수가 없나보다 모든 게 서글프다 ~